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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구총수에도 나오지 않는 합포해전지라고 하는 합포

by gar 수정 삭제
1789년에 간행한 책으로 전국의 호수(戶數)와 인구수를 기록한 책이 바로 “호구총수(戶口總數)”입니다. 호구총수는 총 9권으로 이루어졌으며, 8도에 대해서는 한 도가 1책을 이루도록 편집하였습니다. 

호구총수에는 각 행정 구역에 속하는 면과 리(里)의 수, 동 및 리의 명칭을 적어 놓았고, 면(面)의 호구 수를 적었는데, 원호와 인구수를 적고 남·여 수는 역시 세주로 처리하여 놓았습니다. 

호구총수를 기준으로 인구수가 많은 곳을 살펴보면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은 한성으로 189,153명이었습니다. 이후 평양 107,592명, 의주 89,970명 순이었습니다. 나머지는 충주 87,331명, 전주 72,505명, 경주 71,956명, 함흥 71,182명, 상주 70,497명, 진주 69,495명, 길주 65,202명 순이었습니다.

그래도 여기는 당시 기준으로 인구수가 많은 1위부터 10위까지였습니다. 그러면 경상남도 도시들은 어떠한 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진주 다음으로 인구수가 많은 곳은 밀양이었습니다. 50,901명이고 다음이 고성이었습니다. 41,823명이고 다음이 의령 36,544명, 김해 35,833명, 창녕 34,767명, 거제 30,023명, 창원 29,452명, 남해 25,949명, 함양 24,198명, 함안 22,841명, 합천 22,190명, 거창 20,633명, 하동 20,549명, 영산 20,412명, 사천 17,562명, 곤양 17,312명, 삼가 16,872명, 안의 16,602명, 웅천 15,742명, 초계 15,333명, 단성 13,839명, 양산 12,107명, 칠원 11,785명 산청 10,778명이었고 꼴찌에 진해 7,172명이었습니다. 

당시로는 경상우도와 경상좌도로 나뉘었지만, 저 결과에 대해 현재의 경상남도 인구를 합쳐보면 640,714명이었습니다.

이걸 웅천으로 가져오면 또 다른 재미가 있습니다. 당시 웅천은 5개 면이 있었는데 읍내면, 동면, 중면, 상서면, 하서면이었습니다. 총 59개 마을과 3,282가구가 있었으며, 남자는 6,315명, 여자는 9,427명 총 15,742명이었습니다.  

읍내면은 총 18개 마을과 808가구, 남 1,592명, 여 2,110명이 있었습니다. 이 당시 합포라는 마을은 있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없었습니다. 이 당시에도 수치와 원포는 있어도 합포, 학개, 학계, 합계라는 지명은 없습니다.

읍내면보다 인구와 가구 수가 많은 곳은 동면입니다. 현재 웅동 그리고 가덕도가 있는 천가면 일대가 동면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구가 많습니다. 13개 마을 1,438가구, 총 7,259명, 남 2,731명, 여 4,528명이었습니다.

중면은 13개 마을, 520가구, 총 2,321명, 남 886명, 여 1,435명이고, 상서면은 9개 마을, 336가구, 총 1626명, 남 722명, 여 904명이고,  하서면은 6개 마을, 180가구, 총 834명, 남 384명, 여 450명이었습니다. 

이 호구총수에 각 마을의 지명과 함께 마을 숫자, 가구 숫자, 인구수를 자세하게 적어 놓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도 이 호구총수에도 합포라는 마을은 보이지 않습니다. 학개, 학계, 합계도 마찬가지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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